Oct 20, 2014

소비자를 우롱하는 온갖 수수료들

소비자를 우롱하는 온갖 수수료들

얼마 전 미국 최대의 통신사 AT&T는 소비자들에게 약 850억 원을 되돌려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고지하지 않고 사실상 덤터기를 씌워왔던 수수료를 갚으라는 연방통상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FTC,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의 권고를 이행하기로 한 것이죠. AT&T를 이용하는 다양한 벨소리 서비스나 문자로 오늘의 운세 등을 보내주는 등의 부가서비스 비용으로 매달 약 1만 원($9.99)을 냈습니다. 문제는 이런 부가서비스에 대한 설명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일종의 끼워팔기 형식으로 자동 가입된 소비자들이 대다수였다는 데 있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 25만 원 짜리 표 대신 저렴한 20만 원 짜리 표를 샀다가 나중에 짐을 부치는 비용으로 10만 원을 더 내게 된 고객이 25만 원 표를 샀다면 수하물을 공짜로 부칠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분통을 터뜨리면 항공사들은 그러게 약관을 잘 읽어보시지 거기에 다 나와있는 내용이라고 말해 소비자들의 화를 부추기곤 하죠.

필요한 정보를 차단하고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경제는 공정한 시장 경제가 아닙니다. (New York Times)

원문 - NewsPeppermint

  • 가입시 요금제 선택 범위 제한
  • 반(?)강제식 2–3년간의 약정,
  • 저렴하게 살려고 받는 단말기 보조금에 딸려오는 기간한정 부가서비스 가입
  • (비공식센터에서의) 가입은 자유로운데 해지, 이동은 꽤나 번거롭고 복잡하고 눈치보이는…

현재 대한민국에서의 행태를 생각나는대로 적어봤는데 또 뭐가 있을까?
비단 이동통신업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산업 곳곳에 이런 눈속임들이 숨어있을 것이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기초정보전달량의 수준 상승에 따라 과거보단 덜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보험은 사기다’, ‘국가연금도 믿을 수 없다’라며
많은 보험회사를 믿지못하고 날강도 취급하는 풍경을 보곤 한다.

물론, 온전히 틀린 말이라고는 하기 어렵지만(?) 이러한 인식은 단순히 소비자가 무식해서만 생겼다고 볼 순 없다.

몰라서 하는 질문도 뭘 모르는지 알아야 할 수 있다.
소비자가 상품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할 때, 모든 책임을 오롯이 소비자에게만 전가하는 기업행태는 국가적, 법적인 차원에서 어느정도 규제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Oct 11, 2014

노르웨이의 새 화폐 디자인

원문 - 노르웨이의 새 지폐 디자인 ; 전통과 모던

새 지폐 디자인

노르웨이 국립은행이 2017년에 쓰일 지폐 디자인을 모집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도 특색있는 디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면은 흔히 지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 사진도 없는데다가 특히 뒷면은 디지털 시대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마치 엄청 큰 픽셀로 모자이크 효과를 준 것 같은 느낌입니다.

슬로우뉴스에 오늘 올라온 뉴스인데 정말 파격적인 디자인이다.
저렇게 픽셀이 큰 모자이크라니..

세계 각국의 화폐나 지폐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지폐 디자인계의 자그마한 개혁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감정은 이성의 적이 아니다

감정은 이성의 적이 아니다

1994년 19세 여성이 기숙사 화장실에서 낳은 아이의 사망에 따른 살인죄를 두고,
1심의 유죄판결이 자극적인 사진 등으로 감정적 편견을 이끌었다고 하여 항소심에서 엎어진 이야기.

“감정은 우리에게 쏟아지는 정보들을 걸러내고 선택하게 만들어줍니다. 또한 어떤 정보가 중요한 것인지, 관련있는 것인지, 설득력이 있는지, 기억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항소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인은 분명 비난받아 마땅한 범죄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법률제도는 감정적 반응이 아닌 순수한 이성을 바탕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공감에 호소하거나, 공포를 불러 일으키거나, 처벌 동기를 유발하는 증거들은 제외되어야 합니다.”

감정은 더 주의깊은 판단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또 편견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 한달이 멀다하고 일어나는 요즘의 마녀사냥 사건들을 지켜보며 SNS의 동향을 살펴보면,
    이성적 플롯은 쏙 빠진채 감정에 호소하는 논리적 오류를 띈 이야기들만이 종국에 남아 활개를 치는 모습에 섣불리 과잉판단이나 과소(?)판단[1]으로 이어질까 두렵다.

  1. 흑백논리가 만연해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무거운 죄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

Oct 9, 2014

국정한국사를 반대하는 이유

국정한국사를 반대하는 이유

첫째로 국정교과서는[1] ‘위험한’ 교과서이다.
둘째로 국정교과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질 낮은’ 교과서이다.
셋째로 국정교과서는 ‘부끄러운’ 교과서이다.
마지막으로 국정교과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교과서이다.

대체로 공감하는 부분이다.
역사를 전공으로 하지 않은 이들이 많이 착각하는 내용지식 가운데 대부분은 가설인 경우가 많다.
‘학계에서는 현재 이렇게 바라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라는 말을 TV에서나 신문에서 종종 보곤 한다. 말 그대로 ‘설’이다.
조금 더 가깝게 이야기하면 명백한 증거가 있지만(이를테면 조작된) 그 사람이 범인이 아닌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시간이 흘러 증거만 남아있게 된다면 역사는 그를 범인으로 단정짓는다.
이것이 역사의 모호함이다.

검정교과서는 여러가지 설을 다양하게 바라보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또 배우는 입장에서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가갈 수 있는 접근성을 마련해준다.
하지만 국정교과서에서는 이런 모든 통로가 차단된다.
왜냐하면 역사는 국가에서 발행한 국정교과서에 나와있는 것만이 정설이고 이 정설은 곧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면 국가는 역사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내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이유이다.

평가를 위주로 하는 교육[2]에서는 아무래도 국정교과서가 배우는 자나 가르치는 자 모두에게 더 손쉽게 다가온다.
하지만 역사에서는 역사적 내용지식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얻게되는 역사적 사고방식의 비중 역시 상당하다. 문제는 이 역사적 사고방식이 평가를 위주로 하는 교육체제에서는 측정하기가 매우 난감하다는 것이다.
획일화된 기준을 적용하기가 어렵다. 사고방식에는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이 확연히 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 글을 쓰다보니 난잡해졌는데, 내가 생각하는 부분은..
    과연 검정제도에서는 일당의 무리들에게 독점당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다.
    가끔 내 생각을 짧게 이야기하면 주변에서 많이들 곡해하곤 하던데.. 이 역시 그럴까 우려된다.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서 민주주의는 전제주의를 벗어나고자 탄생했고 시작되었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데 정말 지금은 전제주의에서 벗어났나? 국민은 민주주의에서의 주권을 모두 가지고 있나? 하는 의문에서 갈래를 뻗다보면 검정이라고 과연 그것이 국정을 반대하는 이유에서 나오는 그 참된 검정이 쉽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 더 읽어볼만한 기사
    전국 초중고 역사교사 1034명, ‘교과서 국정화 반대’ 실명 선언
    교육부, 한국사 국정화 찬성 보도자료 배포 파문


  1. 국정은 국가에서 발행하는 교과서이고, 검정은 민간이 발행한 교과서를 국가가 검토해 허가해주는 체제인데, 현행 한국사 교과서는 검정제도이며 검정이 시행된건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교과서 아래 교학사, 지학사 등 사설 출판사 이름이 적힌 것들이 검정, 국사편찬위원회 또는 교육부라고 적힌 과거 교과서가 국정 교과서이다.  ↩

  2. 교육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평가를 중심에 두고 가르치는 교육과, 교육과정을 중심에 두고 가르치는 교육이다.
    전자는 쉽게 말하자면 문제를 미리 내고 그에 따라 교육을 한다. 수능체제처럼 시험을 보는 과목, 범위 등을 미리 정해두기에 가르치는 교육환경에 있어 테두리가 주어지고 방법의 다양성이 많이 묵살된다. 평가가 교육과정을 가둬버리는 아이러니함이 발생하지만 일괄적인 학업측정과 상대평가가 수월하다는 측면에서 어쩔 수 없이(?) 사용된다.
    반면 후자는 우리가 학창시절 수업시간 중간중간에 흔히 보던 형성평가와 같다.
    교육을 하고 난 후, 문제를 낸다.
    따라서 가르치지 않은 것은 절대 문제로 나오지 않는다. 즉 교육과정이 평가를 주도하는 것이다.  ↩

한글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매년 한글날마다,
커뮤니티나 주변인들의 이상한 이야기를 들으며 늘 혼자(?) 외치는 말이지만,

한글과 우리말은 다른 개념이다![1]

Book을 이라고 쓸 수 있는 것이 한글이고,
Book을 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말이다.

저자의 의도가 더 방대한 범위를 아우를 수도 있겠지만,
한글날이라고 무턱대고 외래어나 외국어에 억지로 순 우리말을 갖다붙이는 것은
순수하게 한글 본연의 뜻을 기리는 것과는 다르다는 말.


  1. 한글은 문자! 우리말은 언어!
    알파벳과 영어 역시 다르다는 말과 일맥 상통한다.
    알파벳을 문자로 사용하는 언어는 비단 영어뿐이 아니지 않은가.
    더불어 한자를 문자로 사용하는 국가도 중국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글이 비록 우리말을 담기위해 만들어진 문자는 맞지만 ‘한글=우리말’이라는 개념은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말은 한글이 있기 이전에도 불충분하지만 한자와 같이 다른 문자로 담겨져왔다.  ↩

페이스북, 익명게시판 앱 만든다

페이스북, 익명게시판 앱 만든다

Bits 블로그는 페이스북의 익명 토론 앱이 건강, 질병 문제 등 민감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 할때는 도움이 되겠지만, 익명성에서 흔히 나타나는 스팸, 사칭, 언어폭력등과 같은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는 불분명하다고 봤다.

페이스북 실사용자라기보단 가끔 지인들 소식 구경만 하는 정도인데, 실명과 자신의 얼굴(실제 본인인지는 모르겠지만)을 내걸고도 무례하고 불쾌한 언사를 일삼는 이들이 대다수임을 종종 목격한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뉴스 덧글들을 쭉 훑다보면 뉴스보다[1] 덧글때문에 더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이 잦은데 과연 페이스북에서는 어떠할지 살짝 기대(?)된다.

최근 학교 정규과목으로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코딩’을 지정함에 국내에서도 바람이 부는 모양인데,
뛰어난 기술양성도 중요하지만 지금 있는 기술을 올바르고 건전하게 받아들여 사용할줄 아는 방법도 좀 가르쳤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2]


  1. 국내 대부분의 뉴스가 안좋은 소식임은 부정할 수 없지 않나?  ↩

  2. 물론 이러한 도덕적 교육은 비단 교육기관 뿐만 아니라 사회, 가정까지 3위일체가 되어야만 그나마 효과가 보일듯한데 아무래도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 싶다.  ↩

Oct 3, 2014

최악의 독자

최악의 독자

182. 최악의 독자
책을 읽은 뒤 최악의 독자가 되지않도록 하라…. (중략)
결국 그들은 무엇인가 값나가는 것은 없는지 혈안이 되어 책의 이곳저곳을 적당히 훑다가 이윽고 책 속에서 자기 상황에 맞는것, 지금 자신이 써먹을 수 있는 것, 도움이 될 법한 도구를 끄집어내어 훔친다. (중략)
그리고 그들이 훔친것만을 -어렴풋이 이해한 것만을- 마치 그 책의 모든 내용인 양 큰소리로 떠드는 것을 삼가지 않는다.
결국 그 책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물론, 그 책 전체와 저자를 더럽힌다.

‘초역 니체의 말’[1] 182장을 소략 옮겼다.

글과 정보를 다루는 많은 이들이 꼭 한번쯤은 생각해볼만한, 생각해봐야만 하는 글.

  • 뜬금없이 웬 책 이야기?
    볼품없는 글재주에 이렇다할 전문지식은 불구하고 얕은 식견도 갖추질 못하다보니 자연스레 수박겉핥기식으로 다른 글솜씨들을 훔쳐보곤 하는데, 문득 이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나 여기 이 곳에 다시 한 번 옮겨본다.

  1. ‘초역 니체의 말’
    몇 년전 출간된 책으로, 당시 서점가에서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었는데 나는 이 책을 접하자마자 여러 지인들에게 소개를 해줬던 기억이 난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한 페이지에 주제와 관련된 명언(이라기보단 철학적인 자기숙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을 간략히 담아 짜투리 시간에 읽기 좋았던 점도 소개를 거듭한 이유 중 한 몫을 했다.
    그 후 전작?의 인기를 발판으로 ‘초역 괴테의 말’도 출간되었는데 개인적으로 괴테보단 니체의 사상이 더 즐거웠기에 이 책은 그다지 인상적으로 다가오진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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